대보그룹 히스토리 · 2001 - 2010

3부. 그룹 체제 구축과 가파른 성장

01. 그룹 체제 구축과 신사업 진출

2002년 대보는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인수하면서
IT 분야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이로써 대보는 그룹의 면모를 갖추었다.

2002년 최등규 사장은 대보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회장 취임식은 생략했지만, 그룹 체제를 갖추기 위한 다른 대책은 세심하게 준비해 나갔다.
가장 우선으로 여긴 것은 임직원을 대보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게 조율해 나가는 것이었다.

2002년 건설과 유통 부문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1009-5 구상빌딩 8층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IT 부문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사무실에 있다가,
서울시 서초구 서초2동 1339-9 강남메트로빌딩 7층으로 이전했으며,
다시 2004년 10월에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50 일동제약 4층으로 이전했다.

마침내 2007년 건설, 유통, IT까지,
서원밸리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가 본사를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
대보그룹은 2007년 12월 3일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 로즈데일빌딩 6층으로 본사를 통합해 이전했다.
2007년 대보그룹은 공채 1기도 선발했다.
그룹 차원으로 처음 실시한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이었다.

대보그룹 통합 사옥 이전식 (2007.12.03)

Episode 10매출 200억 회사를 200억 넘는 금액으로 인수?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은 2002년 1월 7일 211억 원, 최고 가격으로 응찰한 대보종합건설 컨소시엄에 낙찰되었다.
삼성, 현대산업개발 등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인수하고자 했던 메이저급 대기업이 많았지만 응찰 가격에서 대보종합건설을 따라오지 못했다.
매출이 고작 200억 원대인 기업을 200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 인수하겠다는 곳은 대보종합건설뿐이었다.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 직원들은 대기업이 아닌, 이름조차 낯선 ‘대보’가 인수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우리 식구가 될 회사인데 당연히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그에 맞는 가격을 써내서 인수해야지요.” - 최등규 회장


02. 건설 부문의 도전과 성장

대보종합건설은 2002년 2월 회사 이름을 대보건설㈜로 변경했다.
기업 신용도 역시 ‘A+’로 그 어떤 기업보다 내실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등규 회장이 스스로 세웠던 무차입 경영 원칙이 바탕이 되었고,
품질경영과 안전시공을 실천해 온 직원들의 힘이 컸다.

공공 토목 분야에서도 명성을 이어 나갔다.
세계 최대 조력발전소인 시화호 조력발전소 등의 굵직한 공사를 공동도급 형태로 수행했다.
2009년 완공한 총연장 9.048km의 고속국도 제151호선 서천-공주간 7공구가 대표적이다.

한편, 대보건설은 2007년 최초로 해외에 진출했다.
스리랑카 함반토타(Hambantota) 국제회의장 건설 공사였다.
무대는 코끼리 100마리가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히 지었다.
스리랑카 최고의 공공건축물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특히 라자팍사 대통령은 국제회의장을 둘러보며 “굿(Good)”을 연달아 외치면서 계속 치하와 격려를 했다.

대보건설은 부산지하철 3호선 301공구, 인천국제공항 접속도로 확장공사 등
토목사업 부문에서도 다양한 실적을 쌓았다. 환경 에너지 부문에서도 성과를 보여주었다.
파주 교하 열병합 공급배관 건설공사는 대보건설이 최초로 원도급사 자격으로
주배관 사업에 진출한 의미 있는 사업이었다.

대보건설은 2010년 시공능력 84위를 기록해 마침내 10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건전한 재무구조와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면서 2007년에는 3,000억 원까지 수주고를 올렸고,
이어서 2008년에는 4,000억 원, 2009년에는 6,200억 원이라는 경이로운 신기록 행진을 거듭했다.
매출도 2006년 2,000억 원에 미치지 못하던 수준에서 2009년 5,000억 원을 돌파했다.

한편, 대보실업도 다양한 국가 기반시설 공사에 참여했다.
국내 최장 터널인 경부고속철도 상촌터널을 비롯해, 원유 750만 배럴을 저장하는
여수 유류 비축기지 건설공사에 이르기까지 의미 있는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여수 유류 구축기지는 전 세계 단일 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2010년 종합건설면허도 취득했다.

2013년 준공한 스리랑카 함반토타 국제회의장

2005년 준공한 여수 유류 비축기지

Episode 11지시 1% 확인 99%

대보 임직원들이 늘 새기고 있는 말이다.
지시를 받은 내용에 대해서 자신이 이행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후배들에게 자신이 내린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조직이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여러 번 확인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회장님이 보령 도로 현장을 방문하셨는데 원가 투입비 대답을 제대로 못 했지요.
이후 3년 동안 같은 질문을 볼 때마다 하셨어요. 대보가 일을 잘하는 이유, 바로 이렇게 확실하고 분명한 일 처리 방식 때문이 아닐까요.”
- 신성탁 대보실업 대표이사


03. 휴게소 사업의 혁신 주도

대보유통은 고속도로 유통 부문의 진정한 선도기업이 되기 위해 규모의 확장뿐 아니라
임직원의 능력 향상에도 공을 들였다. 앞선 휴게소 문화를 창조하겠다는 포부도 키워나갔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판매상품 가격 인하, 서비스 제고, 화장실 시설 개선이 3대 과제로 정해졌다.
주요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관리자 교육이었다.

대보유통은 사내 강사 양성과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2001년 6월 26일부터 27일까지 진행했다.
이후, 관리자 육성과정 교육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은 입소식을 시작으로 공감성 훈련을 진행했다.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입장, 다른 업무에 속해 있는 동료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닌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이었다.
그 밖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으며, 해마다 빠짐없이 운영했다.
<고객서비스를 위한 실무자 지침서> 4권도 발간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악회, 전람회 등을 적극 개최해 문화 공간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조직 내부로부터 변화가 시작된 대보유통 휴게소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고객 서비스와 응대를 시작했다.
2003년 호텔 룸서비스나 항공기 기내식 서비스처럼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김치와 물을 나눠주는 서비스를 시작해 큰 호응을 얻었다.
2010년 한국도로공사가 주최한 휴게소 맛자랑 경연대회에서 대보유통의 5개 휴게소가
영예의 대상부터 장려상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수상했다.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원칙이지 선택이 아니라는 의지의 결과였다.

휴게소 최초 ‘친절 서비스 선포식’ (2004.06.11)

낡은 휴게소에서 신개념 휴게소로 탈바꿈한 오창휴게소

Episode 12기업의 이익은 반드시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

2001년 여름, 온 국토가 가뭄으로 몸살을 앓았을 때, 서원밸리는 골프장 잔디를 위해 어느 정도의 물을 확보해놓고 있었다.
문제는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었다.
“우리만 살 수는 없습니다. 물을 나눠줍시다. 가뭄이 해갈될 때까지 매일 물을 공급해 주도록 하세요.”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물인 300톤만을 남겨두고 가뭄이 해결될 때까지 매일 500톤 이상을 농가에 공급했다.
최등규 회장은 모교인 보령중학교와 대천고등학교를 비롯해 대천 지역 학교에 해마다 장학금을 주었다.
1996년부터 2020년까지 총 5억 원에 이른다.
<“비록 나는 어렵게 공부했지만 후배들은 좋은 환경에서 공부에 전념해 큰 꿈을 이루길 바랍니다.”
대보그룹 최등규 회장이 지난 10일 모교인 충남 보령시 대천고에 기숙사형 학습관인 ‘대보영재관’을 건립해 기증했다.
사재 21억 원을 들여 연면적 1,220㎡(약 370평), 지상 3층으로 지은 ‘대보영재관’엔 디지털독서실·강의실·생활실 등이 있다.
최 회장은 '기업인으로 성공하면 고향을 위해 공헌하겠다는 생각을 늘 가졌는데 이제 조그만 것 하나를 이뤘다.'고 말했다.”>
_2009년 10월 13일 조선일보 기사 중에서

2009년 12월에는 환경재단 주관 ‘2009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36인에 최등규 회장이 선정되었다.
또 2012년 4월에는 서울대학교병원에 의학발전기금으로 사재 3억 원을 기부했다.

대보유통은 환경경영 부문에서도 활약이 두드러졌다.
2010년 1월 15일 환경부 지정 ‘2009년 재활용 가능 자원 분리수거 평가 우수시설’로 옥천휴게소가 선정되었으며, ‘에코(Eco) 쉼터’로 지정되었다.
2010년 12월 20일에는 화성휴게소가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실천 사례공모’에서 휴게소 부문 최우수상으로 선정되어 환경부 장관상을 받았다.
특히, 화성휴게소는 불만이 제기되면 무조건 환불하는 ‘음식 맛 보상제’와 매년 쌀·김치 품평회를 열었으며,
매월 쌀·김치 등급 평가제도 운용했다. 특히 ‘음식 맛 보상제’는 서원밸리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2000년 5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대보유통은 10년 뒤인 2010년 매출 1,560억 원을 달성하면서
무려 3배 가까운 성장을 일궈냈다.

한편, 대보유통은 2010년 3월 3일 휴게소 7개소와 주유소 6개소를 신규로 수주했다.
이제 휴게소 13개소, 주유소 11개소 등 총 24개소를 운영하게 되면서 자타공인 국내 최대 규모의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신규 운영하게 된 휴게소는 리모델링을 해 새로운 편의 시설을 제공했다.

2007년 대보유통은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 최초로 무료 자선음악회 ‘사랑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사랑의 콘서트는 고속도로 휴게소가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04. 대보정보통신의 성장과 도전

대보정보통신의 역사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1995년에 와서야 교통정보표지와 기계를 이용한
통행료 징수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지능형교통체계 (ITS) 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96년 6월 ㈜고속도로정보통신시설관리공단이 출범했다.
1997년 5월 13일 사명이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으로 변경되었다.

1998년 정부는 공기업 혁신의 일환으로 민영화를 추진했다.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도 민영화 대상에 포함되었다.
2002년 1월 7일,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은 대보종합건설 컨소시엄에 낙찰되었다.
입찰을 통해 매각된 지분은 66%였다.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은 민영화가 완료된 이후인
2002년 4월 사명을 고속도로정보통신㈜로 변경했다.
2005년 10월 25일에 DB정보통신㈜로 바꾸었다가,
2013년 3월 15일 지금의 대보정보통신㈜로 다시 이름을 변경했다.

㈜고속도로정보통신 시설관리공단 창립
(1996.06.01)

Episode 134전 5기, 도전은 계속된다!

대보정보통신은 민영화 초창기부터 전력투구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한국도로공사의 ‘통행료 면탈 방지 시스템’ 성능평가에서 탈락했다.
선도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정이었기에 계속 도전을 이어갔지만, 2005년까지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경영진과 기술연구소는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2006년 7월 ‘통행료 면탈 방지 시스템’ 성능 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4전 5기의 성공으로 사업을 수주했다. 경영진과 연구진의 굳건한 신뢰 관계를 토대로 대보정보통신의 기술력은 해가 지날수록 향상되었다.
대보정보통신은 하이패스가 처음 도입될 당시인 2003년 시범사업부터 구축 사업에 참여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이패스 단일 시스템 구축 및 단말기 판매에 주력하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대보정보통신은 시공에서 유지관리까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까지 일련의 전 분야에 대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했다.

대보정보통신은 한국도로공사 의존도를 낮추고 신규 사업 발굴에 나섰다.
전체 매출액에서 한국도로공사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2%에서 57%로 낮추었다.
민영화 후, 민자고속도로와 국도, 지자체 정보통신시설 유지관리,
전산 네트워크, 국도 및 지자체 ITS 구축, 부품 국산화 등 신규 사업을 확장해
사업 다각화를 이룬 결과였다.

이후,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국도, 지자체의 교통 시스템 유지관리와 국방부 등의
IT 아웃소싱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연평균 30%대의 매출 신장을 보였다.
민자고속도로 또는 국도와 장대터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2003년 국내 ITS 사업으로는 최대 프로젝트로 기록되는 ‘우회 국도 ITS 구축사업’을 수주하는 등
설계부터 시공, 유지관리까지 모두 가능한 국내 최고의 교통전문기업으로 그 위치를 확고히 굳혔다.
2004년 초에는 RFID 관련 솔루션을 보유한 ‘하이트랙스’의 최대 지분을 확보하는 등
차세대 IT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유비쿼터스의 핵심 분야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2006년 11월에는 대형 프로젝트로 꼽히는 인천공항공사 시스템 유지관리용역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대기업 계열사인 경쟁사들을 모두 물리친 쾌거를 올렸다.
이로써 대보정보통신은 2007년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을 각각 1,014억 원과 95억 원을 기록했다.
불과 5년 만에 5배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대기업 계열 IT 서비스 회사들도 생존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 속에서
대보정보통신은 10%대의 영업이익률을 보이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대보정보통신은 국내 도로에 적합한 ITS를 구축하면서 실력을 계속 쌓아나갔다.
장대터널의 운영관리와 전문화된 IT 아웃소싱도 제공하면서
국가 IT 인프라 운영과 구축에 앞장섰다.
ISO 20000 인증 획득 등 대외적으로 서비스 품질도 인정받았다.

대보정보통신은 ITS 컨설팅과 구축, 운영, 유지관리 노하우를 U시티에 접목해,
U교통과 U방범, 도시통합운영센터 구축 부문에서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서울 마곡지구와 김천혁신도시 U시티 설계 사업을 수주해
향후 사업을 위한 초석도 마련했다.

경찰청 교통정보센터 구축(2004.12)

인천국제공항 운항통신 운영 및 유지관리 교통시스템

통행료 면탈방지 시스템 벤치마킹테스트
(BMT, 현장 성능평가) 현장

05. 서원밸리의 성장과 발전

서원밸리컨트리클럽은 사랑받는 골프장으로 꾸준히 자리를 잡아갔다.
국내 골프업계의 서비스 경쟁을 촉발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다.
서원밸리가 도입한 서비스 개선 사례는 무려 70여 가지에 이르렀다.
‘라운드 마일리지제’와 ‘그린피 차등제’ 등은 많은 골퍼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런 제도적 장치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정성을 다한 서비스였다.

2002년 2월 서원밸리는 9홀 퍼블릭 골프장 공사에 들어갔으며, 2004년 4월 27홀 골프장으로 탈바꿈했다.
비거리가 280야드에 이르는 대형 골프연습장도 개장했다.

서원밸리는 2003년 5월 SBS 골프닷컴 ‘국내 40대 코스’ 1위에 선정되었다.
이외에도 ‘한국 10대 코스’ 7위, ‘고객 만족 브랜드’ 골프장 부문 선정, ‘전국 골프장 평가’ 3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6년 10월에는 서원코스 2번홀, 6번홀이 ‘한국 베스트 18홀’로 뽑히는 기쁨을 누렸다.
2007년과 2009년에는 ‘친환경 베스트 골프장’ 8위와 6위에 선정되었다.
또한 2007년과 2009년에는 골프다이제스트가 주최한 ‘대한민국 베스트 코스’ 10위, 8위에 이름을 각각 올렸다.

‘서원밸리 자선 그린콘서트’는 햇수로 10년이란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 골프장을 대표하는 대축제로 발전했다.
서원밸리는 결식아동을 매달 지원하는 ‘사랑의 도시락 기금’, ‘도마산초등학교 셔틀버스 운영’,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경로당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실시하는
‘김장 페스티벌’ 등 다양한 나눔을 실천했다.

퍼블릭 골프장 그랜드 오픈 행사 (2004.05.15)

제6회 그린콘서트 개최(2008.05.31)

Episode 14서원밸리 컨트리클럽이 사랑받는 이유

서원밸리 컨트리클럽

경기 북부에 위치한 서원밸리컨트리클럽은 금융가인 여의도 등에서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개성과 매력이 뚜렷한 5개의 코스가 있어서 고객 취향에 맞게 라운딩 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서원밸리는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서원코스와 시원시원하지만 까다로운 밸리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또 서원힐스는 도전 의식을 부르는 전장 거리가 특징인 웨스트코스,
신중한 클럽 선택을 해야 하는 샷 밸류가 높은 사우스코스,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이스트코스로 구성되어
고객들은 원하는 대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서원힐스는 라이트 조도 300럭스 이상으로 최적의 야간 라운드 조건도 갖추고 있다.
한편,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음식 가운데 채소류와 장류는 직접 재배하고, 담근다.
텃밭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신선한 채소와 좋은 장단콩으로 쑨 메주를 띄워서 만든
간장과 된장, 고추장은 음식의 품격을 높여 준다.